△AI와 슈퍼컴퓨터 등을 활용한 ‘쌍둥이 지구(디지털 트윈)’와 빅테크의 오픈소스 모델들이 기후 예측의 속도와 정밀도를 혁신하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존 고정적인 기후 시나리오는 일종의 국제 표준으로서 연구자들이 같은 기준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 년 주기로 갱신돼 시의성 낮고, 당장 필요성이 높은 기후 예측을 제공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첨단 기술은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보다 접근 가능성이 높고, 지속적으로 기존 기후 시나리오를 보완·검증해 기후 시나리오와 예측을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첨단 기술은 기후변화 대응 분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상 속 아이디어가 머지 않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요. 연구기관뿐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까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일기예보는 물론 20년 또는 30년 뒤 기후를 예상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신 기후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후 예측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죠. 또 최신 기후 관측 데이터를 반영해 기존 시나리오를 보다 현실에 가깝게 검증·보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유럽 과학자들이 만든 ‘데스티네이션 어스’는 슈퍼컴퓨터,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일종의 지구 복사본을 컴퓨터 안에 구현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기후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먼저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쌍둥이 지구’ 만들기 프로젝트, ‘데스티네이션 어스(Destination Earth, DestinE)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럽연합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C)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 적응 디지털 트윈인 ‘클라이밋 DT’를 구축해 2024년 6월 본격적인 운영에 착수했는데요. 올해 5월에는 클라이밋 DT를 통해 생산한 첫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데스티네이션 어스에 참여한 기후 과학자, 데이터 과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의 목표는 지구의 기후 조건을 그대로 본뜬 ‘쌍둥이 지구’를 슈퍼컴퓨터 안에 재현하는 것입니다.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The Destination Earth digital twin for climate change adaptation, 올 4월 GMD 게재)에 따르면 클라이밋 DT는 5~10㎞의 매우 높은 해상도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고, 또 지역별로 세분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시간당 출력 빈도, 즉 1시간마다 새로운 기후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생산해 제공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2040년 특정 지역의 홍수 위험이나 해수면 상승 정도’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해 알 수 있는 식인 것이죠. 이를 통해 이곳에 제방을 쌓아야 하는지 여부 등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클라이밋 DT에서 AI는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 품질 점검과 이상 탐지 등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고, 계산 효율과 해상도를 향상시키는 역할도 맡는다고 합니다.
올 1월 엔비디아는 기상·기후 예측을 위한 ‘어스-2’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엔비디아가 내놓은 예측 모델에는 15일간의 날씨 예보를 위한 중기예보 모델과 6시간짜리 단기예보 모델, 다양한 기상관측 자료를 빠르게 통합할 수 있는 글로벌 데이터 통합 모델 등이 포함됐습니다.
엔비디아는 이들 모델을 적용하면 그간 엄청난 연산이 필요해 슈퍼컴퓨터에 의존해야 했던 기상 예보의 시간·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빅테크인 구글은 앞서 2023년 11월 딥마인드가 개발한 ‘그래프캐스트’를 공개했죠. AI로 10일 예보를 더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IBM은 미 항공우주국(나사, NASA)가 모아온 40년치 지구 관측 데이터를 학습한 ‘프리스비-웨더-클라이밋(Prithvi-weather-climate)’을 2024년 9월 내놨습니다. 구글과 IBM이 개발한 것은 지구의 디지털 트윈은 아닙니다.
빅테크들은 스스로 개발한 기후 예측 시스템을 모두 오픈소스화, 즉 무료로 개방했다는 점인데요. 빅테크들이 막대한 전기와 물을 사용하는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아무튼 이런 노력들로 인해 AI와 기후변화 콜라보레이션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는 살아 움직인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기후 예측 시스템은 기존보다 몇 가지 큰 개선점을 갖습니다.
첫 번째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것인데요. 데스티네이션 어스 연구진은 기존 기후 시뮬레이션은 기후변화 적응, 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맞춤화 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보통 지역 또는 권역별 시뮬레이션으로 보완되는데, 이런 방식은 모든 지역을 포괄하기 위해 종종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고, 업데이트 빈도가 낮아지고, 무엇보다 자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지역은 필요한 기후 예측을 확보하려면 여러 장벽에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후 예측을 보다 신속하게 수행하고, 예측의 시의성 역시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지금까지 기후 시나리오는 결합모델비교프로젝트(CMIP), 국제 지역기후 상세화 프로젝트(CORDEX) 등을 통해 작성돼 왔습니다. 우리가 기후변화 기사에서 흔히 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온실가스 저배출 경로’ 같은 표현이 이러한 기후 시나리오를 의미합니다.
이런 기후 시나리오들은 방대한 계산과 검증을 거쳐 수년 주기로 갱신됩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관측 결과나 기술 혁신, 경제와 산업 변화가 나타나더라도 기존 시나리오에 즉시 반영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후는 계속 변하는데, 기후를 설명하는 시나리오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변하는 셈인 것이죠. 첨단 기술 접목은 이 간극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데스티네이션 어스 연구진은 논문에서 기후 예측도 이제 데이터 생산자와 소비자 간 상호 작용이 중요해졌다고 짚습니다. 최근 독일 쾰른시가 폭염 대응 조치로 설치한 물을 내뿜는 호스 주변에서 시민들이 무더위를 잠시 피하고 있다.
올해 5월, CMIP가 이른바 가장 극단적인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인 SSP-8.5를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기후변화 분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SSP-8.5는 ‘기후변화를 완화하려는 정책이 거의 없거나 부족하고, 화석연료가 이번 세기 내내 증가하는’ 가정을 전제로 온실가스가 가장 높게 배출될 경우를 상정한 것인데요. 그런데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보다 더 적은 경향을 나타내왔고, 무엇보다 각국에서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이 크게 낮아지면서 화석연료만 계속 사용할 경제적 유인이 작아졌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기후변화가 거짓이었다는 점을 시인했다’며 비판을 이어갔고, 극단적인 시나리오 하나의 실현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기후변화 자체가 부정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반박 또한 거셌죠. 이번 논쟁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 ‘기후 시나리오는 현실에 맞게 변화할 될 수 있으며, 또 수정이 가능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가 아닐까 합니다.
기후 예측, 양방향·동적으로 진화 앞둬 그렇다고 기존 방식의 기후 시나리오가 뒤쳐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긴 호흡의 기후 시나리오가 갖는 장점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고정된 시나리오는 국제 표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요. 시나리오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연구자들이 같은 기준으로 연구를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정책과 모델 개발에 안정성 또한 제공하죠. 아울러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나리오라고 ‘적중률 100%’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고요. 아직 AI가 기후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하는 수준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클라이밋 DT도 CMIP가 작성한 공유사회경제경로(SSP)3-7.0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기후 시나리오도 기술의 힘을 빌려 점차 동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첨단 기술은 더 정확한 예측을 넘어 기후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적응 정책의 출발점이 되는 기후 시나리오를 얼마나 현실에 가깝게 만들고 검증해 나가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