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LNG 발전소 추진 박차…팹 속도전 대응, 원전·태양광·풍력만으론 한계

반도체 팹 4기가 들어서는 광주 일대에 액화천연가스(LNG)복합발전소를 신설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반도체 팹의 조기 착공과 빠른 램프업(양산 물량 확대)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을 이른 시일 내에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이르면 연내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8일 당정과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체 전력수요 6.3GW(기가와트) 중 일정 부분을 LNG복합발전소로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보령시·태안군 일대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들은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LNG복합발전소로 대체될 예정인데 이들 중 일부를 서남권에 재배치하거나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LNG복합발전소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서해안에 집중 분포된 석탄 발전소를 LNG로 대체해 전력 소비지역 인근으로 옮기는 작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말 가동 연한 30년이 된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의 발전을 종료하고 올해부터 경북 구미시 하이테크밸리 5산단에 LNG발전소를 신설해 상업가동한 바 있다.

서남권에 산업용 전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니 이에 맞춰 석탄 발전소 대체 계획을 조정한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전남 일대에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를 더 지을 수 있다고 시사한 데 이어 LNG복합발전소까지 동원하는 것은 광주 팹 가동에 속도를 내기 위한 전략이다.

전남 영광 한빛원전 부지에 1.4GW급 원전 2기를 신설할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포화 상태인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 확보 문제와 주민들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최소 8년 이상의 절대 공기(工期)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권에는 태양광발전소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기는 하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연계하더라도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신규 발전원이 서남권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경우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신규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면서도 공사 기간이 원전보다 훨씬 빠른 LNG발전소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회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이날 공개 간부회의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2030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면 속도전에 또 속도전”이라며 “예상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와 원전에 이어 LNG복합발전까지 포함시키기로 한 배경에는 이 사업을 초(超)가속도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자리잡고 있다.

반도체 생산능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전력부터 용수에 이르기까지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방법을 모두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 역시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막대한 전력 공급을 2~5년 내에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능력을 검증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와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에는 1~2GW(기가와트) 용량의 LNG복합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다. 대규모 전력 수요지 인근에 발전소를 건설한 뒤 전기 공급을 전담하는 ‘온 사이트’ 방식이다.

화석연료 기반 전력 생산에 부정적이던 기후부가 LNG 복합발전소 건설에 협조하는 것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요구하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워서다. 우선 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한빛원자력본부 인근 주민들이 원전 확대에 부정적이다.

이 같은 문제 탓에 영광군은 올해 초 진행된 신규 원전 부지 공모에도 신청하지 못했다. 원전 건설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새 원전을 만드는 데 통상 13년 11개월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원전 부지를 활용해 5년 남짓한 부지 확보 기간을 단축하더라도 새 원전을 만드는 데는 8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바 건설에 착수해도 2034년께나 전력 공급이 가능한데 지역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2030년대 중반 가동될 반도체 팹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해가 뜰 때만 전기를 만드는 태양광발전은 24시간 전력이 필요한 산업 시설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어렵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해도 하루 중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8시간 정도에 그친다. 상대적으로 야간에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 해상풍력발전과 연계하는 방안이 있지만 당장 설비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 한계다.

기후부는 2030년 이후 매년 4~7G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 설비를 착공한다는 계획이지만 대규모 인프라 사업의 특성상 수년씩 사업이 지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전력을 끌어오기는 쉽지 않다. 이미 서남권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느라 전국 곳곳에서 주민과 전력 당국 사이 갈등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경상도는 말할 것도 없고 여수·순천의 남는 전력을 쓴다 해도 상당한 길이의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며 “지역 주민 반대에 공사가 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기존에 안정적으로 활용해 오던 방식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LNG복합발전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고 최신 설비들은 중장기적으로 수소 혼소·전소 방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어 탄소 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허가 문제만 해결되면 3~5년 만에 상업운전 단계까지 돌입할 수 있어 정부의 반도체 팹 속도전을 지원하기에 최적이다.

LNG복합발전 설비를 열병합 방식으로 활용하면 전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남은 열에너지를 증기 형태로 산업 시설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에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반도체를 포함한 대규모 산업시설을 돌리는 데는 전기와 용수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열에너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전소로서도 남는 열에너지를 빠짐없이 사용해 설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실제 SK하이닉스 청주·이천 공장이 직접 열병합 발전소 설비를 지어 증기까지 받는 방식으로 반도체 설비에 비해 경쟁력을 높였다”며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대규모 산업 시설에 발전 시설을 지어 전기와 증기를 공급받는 것은 해외에서 일반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가 필요한 전력 15GW 중 3GW를 산단 내 LNG발전소를 통해 조달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LNG발전소가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LNG발전의 구입 단가는 1㎾h(킬로와트시)당 158.4원으로 주요 전원 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반도체 기업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속도를 가장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남권에 LNG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후부가 기존에 작성한 석탄발전소 폐지 계획도 다시 짜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기후부는 가동 연한 30년에 도달한 석탄 화력발전소의 문을 닫고 같은 용량의 LNG복합화력 발전소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지하기로 했다. 향후 5년 내 폐쇄될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경우 이미 공주·여수·고성·용인 등으로 대체 지역이 이미 정해진 상황이다.

2034년에 문을 닫는 인천 영흥 1·2호기와 2036년 수명이 다하는 당진 5·6호기의 대체 지역은 미정이지만 시점이 2030년대 중반 이후라는 점이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 입지가 정해지지 않은 곳들은 2040년 가까이 돼서 결정될 테니 속도전과는 거리가 있다”며 “변화한 전력 수요에 맞춰 계획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